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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은주 한의사 / 생태주의 건강 성생활 (2)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10-20 조회 4558
내용
인터넷에서 판매되는 전자책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은 19금에 해당하는 도서들이라고 한다. 19금 도서의 대다수는 성(性)을 다룬 책들이다. 그만큼 일반 독자들은 성에 관심이 많다는 듯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한국인의 성생활은 실제로 얼마나 활발할까.
최근 언론에 보도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인들은 여전히 성생활이 빈곤한 편에 속한다. 1천명 넘는 성인들 중 기혼남성의 25%, 기혼여성의 38% 정도가 성 관계를 월 1회 이하(섹스리스 포함)로 하고 있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성생활에 덜 적극적인 것은 한국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피임기구 콘돔을 만드는 회사가 세계 여러 나라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성생활 관련 설문조사를 해마다 하고 있는데, 이 조사에서는 언제나 서양인들보다 동양인들의 성생활이 월등 소극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서양인들이 적어도 사흘에 한번 정도라면(그래도 연간 100회를 넘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동양인들(인도나 중국 일본인들)의 개인 평균 횟수는 연간 40회에서 80회 사이에 머문다.

성생활의 빈도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여러 가지다. 동양과 서양인들 사이에 차이가 뚜렷하게 있는 것으로 보면, 그 중에서도 문화적 요인이 결정적 요인들 가운데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서양인들은 성생활을 전적인 프라이버시로 여겨 되도록 간섭하지 않고, 나이 스물 즈음이면 아무리 부모자식 간이라도 그것에 참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신 아시아의 대부분 국가에서는 성생활의 절제가 중요한 개인의 덕목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 우리가 아는 많은 유럽쪽 저명인사들이 공식적인 자리에도 아직 부부가 아닌 ‘연인’을 대동하는 데 반해 아시아에서는 더구나 저명인사가 배우자 아닌 연인을 공개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조에 대한 관념도 마찬가지다. 아시아의 청년들 가운데는 아직도 혼전 경험을 죄악시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지만, 유럽의 청년들은 훨씬 더 자유롭게 혼전 연애를 즐긴다. 심지어 결혼한 부부가 서로의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오픈 메리지(open marriage)’의 경향도 구미에서는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으나, 대다수 한국인들에게는 민망스러운 외계 풍습 정도로 여겨질 뿐이다.
문화적 차이는 그렇다 치자. 그래서 상대적으로 한국인들의 성생활이 활발하지 못한 편이라 치자. 그래도 별 불만이 없다면 다행이다. 문제는 그런 상태에 대해 많은 부부들이 실제로는 불만을 갖고 있다고 하는 점이다. 설문에 따르면 한국인들 대다수는(80% 이상) 인간관계(부부관계)에 있어서 성생활은 중요한 요소라고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정상적인 부부들 가운데 1/4에서 1/3에 가까운 수가 한 달에 한 번도 관계를 갖지 않고 있다는 건 분명히 모순된 현상이다. 많은 부부들이 실제로 성 관계 횟수가 적다는 데 대해 스스로 문제가 있다고 느끼거나 상대를 향한 불만을 갖고 있다.

부부가 성관계를 소홀히 하게 되는 이유와 동기는 다양하다. 부인이 출산을 하는 경우, 이를 계기로 부부관계를 자제하다가 그만 원상회복을 못한 채 관계가 드문 사이로 변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서로 양보할 수 없는 문제로 대판 싸움을 벌이거나 자존심 싸움의 여파로 등을 돌리고 자다가 그대로 등 돌린 사이로 변하는 경우도 있다. 나이가 들어 경제력이 생기고 신혼 단칸집이 방 2개~3개의 집으로 늘어나다 보면 각방을 쓰는 게 편해져서 습관적으로 따로 자다보니 점점 서먹해져서 급기야 남남처럼 되기도 한다. 부부관계에서 성생활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이 중요하다. 이혼에 이르는 부부의 대다수가 언젠가부터 성생활이 중단된 상태였다는 건 흔한 사례다.
성관계를 갖지 않는 부부의 경우 남편과 부인을 각기 면담해서 들어보면 서로 그 책임을 상대에게서 찾는 경우가 많다. 상대가 정나미 떨어지게 해서 의욕이 안 생기는 것이라거나, 나는 정상적으로 욕구를 느끼는데 상대가 원하지 않는 것 같아서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구체적으로 왜 그렇게 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상대가 섹스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불만은 알고 보면 오해인 경우가 많다. 실제로 하기 싫어하는 건 아닌데, 상대가 자신의 기대와 다른 반응을 보이면 혼자 속으로 하기가 싫은가보다, 혹은 내가 싫은가 보다 지레짐작하여 자신도 냉담해지는 일이 적지 않다. 적어도 그것을 말로 물어서 진의를 확인하려는 노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런 오해를 없애려면 부부간 자신들의 섹스에 대한 구체적인 대화가 필요하다.

요즘은 피곤해서 발기가 잘 안된다든가, 관계를 갖고 나면 출근해서 졸게 된다든가, 자신이 관계를 회피하는 사유가 있다면 그것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 눈치껏 알아주겠지 하며 침묵을 지키는 것보다 훨씬 좋다. 자존심은 밖에서 남들과의 사이에서 지키면 된다. 배우자끼리 성관계를 회피하는 사유를 말도 못하고 혼자서 끙끙 앓은들, 이제 내가 싫어졌나보다 하고 오해를 받는 것 밖에 더 있겠는가.
성생활이 예전 같지 않다며 해결책을 찾아 내원하는 분들이 종종 있다. 의사는 두 사람의 생각을 각각 들어보고 또 같이 들으면서 중간자의 입장에서 문제점을 찾아낼 수 있으니, 환자는 상담을 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중년 이후에는 체력이 문제인 경우가 많다. 체력이란 단순히 컨디션의 좋고 나쁨을 의미하는 것만이 아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고 만성적으로 지쳐있거나 발기력 부족, 지속시간의 단축, 조루나 성교통증 같은 현상이 나타날 때, 체질과 체내 장부의 상태, 생활습관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그 원인을 찾아내고 해결책을 찾아내는 게 의원이 하는 일이다.
성 기능의 약화는 단지 성기 자체의 문제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오장육부의 유기적인 활동이 무언가에 의해 장애를 받을 때에도 일어날 수 있다. 특히 갱년기로 접어든 사람의 몸은 매우 민감하여 생활환경이나 신체조건의 변화, 심리적 충격 같은 조그만 변화만 있어도 곧 전체적인 균형이 흐트러지고 그것이 성기능 장애로 이어지기도 한다. 성기능이란 오장육부의 기능 상태에 따라 강해지기도 하고 약화되기도 하는 총체적인 반영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것은 나무의 가지 끝에 매달린 꽃과 같아서 나무의 건강상태에 따라 튼실한 꽃을 피우기도 하고 필듯말듯 져버리기도 한다.

생활습관의 개선도 중요하다. 사랑하기를 원한다면, 사랑을 나누려고 하는 그 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남편이 욕구를 느껴 사랑의 신호를 보내는 순간, 밀렸던 일상의 얘기를 꺼내는 부인은 남편을 금욕적인 수행자로 만들기 십상이다. 부인이 욕망의 신호를 보낼 때 일감을 꺼내들거나 일 얘기를 꺼내는 남편도 섹스리스 유발자이긴 마찬가지다. 의도적으로 회피할 요량이 아니라면, 사랑이 시작되려는 순간엔 그것 이외의 모든 두뇌활동은 잠시 꺼두는 게 좋다. 상대가 욕구를 표시할 때, 다른 모든 생각을 뒤로 미뤄두고 일단 욕구를 존중하여 호응하는 태도야말로 부부간 온도 높은 사랑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습관이라는 걸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모든 금슬 좋은 부부들은 서로 사랑의 신호에 민감하며 결코 그것을 무시하지 않는 좋은 습관을 지녔다.
(한의사, 대화당한의원 원장. 한국밝은성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