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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회적 거리’와 ‘정서적 거리’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8-10 조회 194
내용
‘사회적 거리’와 ‘정서적 거리’


“인류사회가 다시 과거와 같은 질서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세계 각국의 지성인들이 한 목소리로 경고하고 있다. 한 마디로 꿈을 깨라는 말이다. 많은 것이 변하고 있다. 20세기까지의 문명과 질서는 분명하게 어떤 분기점에 도달한 것이 분명하다.
현재까지의 질서가 수명을 다했다면 앞으로는 어떤 기준, 어떤 질서가 도래할 것인가. 관심사는 여기로 모아진다. 인터넷을 통하여 학자들 사이에 토론이 활발하다. 세계 석학들이 한 자리에 모여 토론하던 컨퍼런스들은 형식부터 달라졌다. 모두 온라인 토론회로 바뀐 것이다. ‘온라인 컨퍼런스’ ‘웨비나(웹-세미나의 합성어)’ 등 이름부터 다소 생소하다.

토론 주제의 핵심은 간단하다. 어떤 질서가 도래할 것인가.
참가자들 다수의 의견은 여기서 크게 두 가지 갈래로 갈리는 듯하다. ‘80년대 이전에 가까운 과거 질서로 돌아갈 것이다’와 ‘전에 없던 새로운 질서가 등장할 것이다’가 그것이다.
우선 과거로 돌아간다는 쪽은 그럴 수밖에 없는 조건들을 제시한다. 블룸버그통신이 호주를 예로 들었다. 많은 부문에서 거의 80년대 같은 경제 환경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로운 국경이동이 막히면서 관광과 무역이 위축되었다. 이런 사정은 관광산업에 의존도가 높던 나라들에게 똑같이 적용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관광산업은, 많은 문화유적지들이 몸살을 겪을 정도로 호황이었다. 여행 성수기에는 1만6천대 이상의 항공기들이 동시간대에 지구 상공을 비행하고 있었다. 지금은 그보다 많은 숫자의 비행기들이 지상에서 먼지를 뒤집어쓰며 언제일지 모를 재기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었고, 새로 대학문을 나서는 젊은이들은 취업의 기회를 잡기도 어렵게 되었다. 그런데 대다수 노동인구가 ‘직장인’ 신분으로 아침저녁 깍듯이 출퇴근을 하여 자기 집을 벗어나 ‘직장’에서 일하는 문화도 사실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60-70년대를 돌아보면 직장에 출퇴근하는 사람들보다는 시간제 근로자보다는 각자 자기 농사를 짓거나 (무직이거나) 자유롭게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런 시절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모든 청소년들이 시간에 맞춰 학교에 오고가는 교육제도가 정착된 것도 대다수 나라에서 1백년을 넘지 않으니, 코로나19가 가져온 학교 휴업의 풍경도 사실 몇십 년의 시간을 뒤로 돌린 정도의 변화에 불과하다. 어찌보면 20세기 중반까지의 농경사회와 같은 풍경인데, 호주의 경우 실제로 3차 산업이 위축된 대신 1차 산업인 농산물과 광물 생산은 늘었다고도 한다.

이동/ 물류가 위축되면 사람들은 새로운 세계를 찾아 돌아다니기보다는 자기 주거지역 내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낯선 사람들과의 접촉이 많은 유흥이나 여행에 대한 경계심도 높아지기 때문에 자연히 활동반경이 과거 수준으로 돌아가는 것도 불가피하다. 가족과 더불어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가족주의가 부활할 가능성도 높다. 민족주의와 보호무역주의의 회귀에 대한 경고도 나온다.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은 70년대의 동서냉전시대를 되돌아보게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과거와 같은 지역주의 민족주의로 이어져 과거 냉전시대와 같은 갈등과 대결의 시대가 재현될 가능성은 인류가 가장 경계해야 할 바다. 작게는 우리 사회가 집단중심과 개인주의로 되돌아가 사회 계층간, 집단간 이기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런 복고 전망에 대해 ‘새로운 질서가 등장할 것’이라고 맞서는 사람들은 예전에는 없던 정신적 기술적 소통망이 훨씬 더 강력하게 지구촌을 덮고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국제사회의 물리적 교류가 70-80년대 이전처럼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 때에는 없던 정신적 기술적 소통망이 훨씬 더 강력하게 지구촌을 덮고 있기 때문이다. 물리적 거리는 멀어지더라도 정신적 거리는 오히려 가까워졌다. 코로나19와 같은, 인류가 집단 이익을 떠나 공동대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전 지구적 위협이 등장하면서 지식과 기술의 공유, 범지구적 집단지성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19의 의미를 많은 사람들이 되새겨보면서, 인류를 향한 지구 생태계의 경고와 요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국가 간 민족 간의 거리는 좁혀져 왔으며, 유기적 관계의 필요성은 더욱 높게 인식되고 있다. 이제 새삼 선을 그을 것인가.
‘사회적 거리두기’는 불가피해졌지만, 그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 민족과 민족사이의 ‘정서적 거리감’으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인류가 앞으로도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물리적 간격이 멀어지는 만큼 그것을 대신할 정서적 공감대를 넓히고 정신적 연대를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류의 새 질서는 이러한 노력의 토대 위에서만 희망적으로 펼쳐질 수 있을 것이다.
[대화당한의원, 한국 밝은 성 연구소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