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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운이 오그라들 땐 억지로 하지 마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4-06-21 조회 4466
내용 한의사 이은주 / 생태주의 건강 성생활

즐겁게 살아야 건강에도 좋고 장수에도 좋다고들 말한다. 과학적 근거가 있을까.
그저 ‘기분 문제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 ‘기분’이 몸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과학적 사실이다. 즐겁게 밥을 먹으려 하다가 기분 나쁜 욕설을 들으면 밥맛이 떨어지면서 젓가락을 내려놓게 된다. 밥맛이 떨어진다는 것은 단지 기분만의 문제가 아니라 구체적인 신체반응이다. 이런 느낌을 무시하고 억지로 밥을 먹었을 때는 밥이 잘 내려가지 않고 위장에 얹혀 급체가 생기기도 한다. 사람의 감정과 기분은 구체적인 신체반응으로 이어진다.

때문에 과학자들은 감정을 무시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감정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도 문제지만, 감정을 무작정 억누를 때도 문제다. 그것은 필경 몸에 해로운 영향을 가져올 수 있다. 감정은 몸을 보호하기 위해 나타나는 본능적 장치이기도 하다.
음식을 먹고 소화시키는 일은 상당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이렇게 되면 지금 당장 슬픔이나 분노 감정의 원인이 된 어떤 일을 해결하기 위한 두뇌활동에 에너지를 집중시키기가 어렵게 된다. 두뇌에 있는 컨트롤 타워에서는 모든 에너지를 두뇌로 집중시키기 위해 당장 급하지 않은 일들을 중단시킨다. 그로 인해 식욕이 떨어지고, 대개는 음식을 먹지 않거나 덜 먹게 된다. 자연적인 메커니즘의 결과인 것이다.
반대의 경우, 편안히 밥을 먹은 뒤에 두뇌활동이 저조해지는 것도 느낄 수 있는데, 이 또한 몸의 에너지가 이미 소화기관에 집중되어 두뇌가 둔해지기 때문이다. 소화기관에 동원되고 남은 에너지가 극히 저조할 때는 아예 졸음이 밀려오기도 한다.

감정이 몸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신경생리학 분야에서는, 이러한 인체의 본능적 메커니즘을 구현하는 데 신경전달물질인 펩타이드(호르몬)이 주요한 작용을 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펩타이드는 단백질 원료인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물질이다.
인체에서 가장 먼저 작용하는 펩타이드는 소화 계통의 펩타이드다. 분노나 슬픔 공포 등의 감정작용이 일어났을 때, 식욕이 떨어지고 급체와 같은 소화불량 증상이 무엇보다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감정적 쇼크가 좀 더 크다면 위장에서는 출혈이 일어나 궤양으로 진전된다. 처음에 일어나는 증상은 소화불량이지만, 이를 유발한 감정이 장기적이고도 지속적으로 유지된다면, 그 영향은 위나 장에 그치지 않고 다른 소화기관으로 확산될 수 있다.

우리 말에 ‘간이 쫄아들었다’ ‘간 떨어진다’ ‘간담이 서늘하다’ ‘비위가 약하다’와 같은 말이 있는데, 이는 감정적 쇼크로 인해 소화와 관련된 장기들의 기능이 위축되는 현상을 나타내는 말이다. 반대로 ‘담대하다’ ‘간이 크다’ ‘비위가 좋다’와 같은 말은 이러한 소화 장기들이 건강하고 기능이 활발해서 어지간한 충격으로는 위축되지 않음을 드러낸다. 감정이 식욕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가 일상에서 이미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셈이다. 부정적 감정의 장기적인 유지와 억압은 좀더 심각한 문제를 가져오기도 한다. 에너지 대사의 순환에 문제가 생겨 복원력을 잃게 되면 당뇨병이나 고혈압 같은 난치성 만성질환도 나타나게 된다.
감정이 성 기능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까. 그 또한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다.
멋진 몸을 가진 남자나 여자를 보았을 때, 사람들이 성적인 감흥을 쉽게 느끼는 것을 보면, 성적인 뉘앙스를 가진 자극에 의해 일어나는 감정 역시 인체에 직접적이고 신속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시각 청각 혹은 후각이나 촉각이 모두 성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긍정적 감정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자극은 성적 감정을 가라앉히기도 한다. 분노와 슬픔 공포는 모두 성감을 위축시키는 감정이다.
직접 보고 듣고 만져서 얻는 자극 뿐 아니라 상상에 의한 자극도 똑같이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 현대과학의 많은 연구 실험들을 통해, 인간의 감정은 인공적인 자극에 의해서도 충분히 촉진되거나 감소될 수 있으며, 이 인공적 감정이 몸에 미치는 영향도 실제 자연스럽게 일어난 감정의 영향과 같다는 것이 입증되어 있다. 공상영화들을 보면, 미래의 인간들이 컴퓨터에 프로그램된 이미지들을 통해 가상의 섹스를 나누는 장면은 종종 볼 수 있다. 이것으로도 실제 섹스와 다를 바 없는 오르가슴에 도달한다는 것은, 실제 가능한 일이다.
레스토랑에서는 고객들의 식욕을 돋우기 위해 기분을 설레게 하는 경음악을 많이 사용하고, 쇼핑매장에서는 고객의 구매욕을 자극하려고 가볍고 경쾌한 음악을 이용해 기분을 들뜨게 만든다. 모두 과학적으로 고안된 마케팅 기법이다. 시청각을 자극하는 음악과 색깔, 그림 등은 오늘날 마케팅 전문가들에 의해 폭넓게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감정을 다 조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장례식장에서 경쾌한 음악을 틀어놓는다고 사람들의 기분이 좋아질 수는 없으며, 오히려 슬픔을 안고 찾아온 조문객들의 기분을 거스르기만 한다. 결혼식장에서 무거운 음악을 연주해도 아마 십중팔구 좋은 소리 듣기는 어려울 것이다. 근래 중국에서는 장례식에 경쾌한 음악과 춤까지 등장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호상(好喪)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등장한 관례일 것이다. 억지로 하는 곡(哭)이나 마찬가지로, 도를 넘는 가무 역시 위선일 수밖에 없다.

슬픔과 분노, 긴장의 감정이 지배할 때 식욕이 떨어지면, 몸이 시키는대로 먹는 것을 자제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건강을 위해서도 낫다. 물론 지나치게 굶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슬픔과 분노, 긴장의 감정은 성욕도 떨어뜨릴 수 있는데, 이때에도 억지로 섹스를 하기보다는 몸이 시키는대로 섹스를 잠시 중단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감정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원상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그때까지라도 한시적으로 자제하면 될 것이다.
지난 한 달 동안 한국 사회에 큰 슬픔과 분노의 시간이 휩쓸고 갔다. 그 여운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언제까지나 슬픔에 빠져있을 수는 없지만, 그 감정이 지배하는 동안은 에너지 소비를 절제하며 사는 것도 좋다. 감정을 존중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이 거대한 부정적 감정의 그늘로부터 어떻게 하면 빨리 빠져나와 다시 긍정적 감정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합리적이고 적극적인 치유의 방법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사회적 차원에서, 또 개인적 차원에서 시급한 과제임이 분명하다.
(한의사, 대화당한의원 원장. 한국밝은성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