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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해로동혈에 대한 약간 다른 해석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8-26 조회 2294
내용 해로동혈에 대한 약간 다른 해석 2017년 08월 08일 (화) 00:35:49 이은주 밝은 성 연구소 원장 webmaster@newsmaker.or.kr 결혼식 주례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백년해로’란 말이다. 백년을 함께 늙어가라는 말. 중국 고전 <시경> 패풍 가운데 ‘격고’라는 시에서 이 말은 처음 등장했다. “죽으나 사나 만나거나 떠나거나 그대와 함께 하리라 언약했지. 그대의 손을 잡고 너와 함께 늙겠노라…. (生死契闊 與子成說, 執子之手 與子偕老)” 고이 함께 늙어가는 노부부의 애틋한 사랑노래가 아니다. 민요의 주인공은 나이 들어 전선에 차출된 병사다. 벌써 수년째. 전쟁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 끌고 다니던 애마도 지쳐서 죽었는데, 자신인들 죽기 전에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까. 망연한 가운데 밤하늘을 보면서 홀로 늙어가고 있을 아내를 그려보는 것이다. “아, 멀리 떠나 그 언약을 어기게 되다니.” 맺음말이 구슬프다. 역시 <시경>에 나오는 또 다른 말 ‘동혈’이란 말과 합성되어 ‘해로동혈’이란 성어가 생겼다. ‘살아서는 같이 늙고 죽어서는 한 무덤에 묻힌다.’ 그러고 보니 함께 늙고 같이 묻히는 것을 사람들이 이상적인 부부의 결말이라 여긴 것은 이미 수천 년 전부터의 일이었나 보다. 해로동혈에 대한 환상은 시경만큼이나 오래된 서양고전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리스 신화 얘기다. 신들의 왕 제우스가 인간을 지상에서 전멸시키려고 마음먹은 적이 있었다. 인간들이 너무 부조리하고 사악한 것을 더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라나. 그러나 인간을 아끼고 좋아하는 신들도 많았으므로, 예컨대 헤르메스와 아폴론들이 나서서 인간을 변호하고 그 계획을 재고하도록 간청했던 것이다. 제우스는 인간의 선량함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자는 두 신의 제안에 따라 나그네로 변장하고 함께 인간세상 미행에 나섰다. 황량한 벌판을 지나 어느 외딴 농가를 찾아들어갔는데, 누군가 처마 밑에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나 뛰어나왔다. “어서 오십시오. 나그네님들.” 나이 많은 농부가 그 마누라와 함께 낯선 길손들을 반갑게 맞아들였다. 그들의 이름은 필레몬과 바우키스다. 필레몬이 나그네들을 위하여 잘 자리를 준비하는 사이 마누라 바우키스는 있는 것 중에 가장 괜찮은 재료들을 꺼내 음식을 차려주었다. 인간은 모두 사악하다는 제우스의 주장은 틀린 것이 되었다. 감동한 제우스가 두 노인에게 자신들의 신분을 밝히면서 말했다. “소원이 있으면 말해보라. 말하는 건 뭐든 다 들어주겠다.” 그러나 노부부는 욕심도 없고 실제로 별로 아쉬운 것도 없었다. 취직을 부탁해야 할 자식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화려한 옷이나 음식 같은 건 구경해본 적도 없으니 그게 왜 필요한지도 모르겠고, 시장에 다니는 사람들도 아니니 금은보화나 뭉칫돈 같은 게 필요하지도 않았다. 세상에 부탁할 게 아무 것도 없는 인간도 있다니. 신으로서 아무 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기분이 미묘해서 오히려 제우스가 간청했다. “제발 무언가 부탁을 해보라. 나의 능력으로 다 이루어주겠다.” 노인은 한나절을 생각한 끝에 겨우 입을 뗐다. “다른 것은 바랄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만, 생각해보니 딱 하나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는 이대로 살다 가면 되겠습니다만, 만일 내가 먼저 죽거나 마누라가 먼저 죽으면 남은 사람에게 고통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 나와 마누라 두 사람, 죽을 때가 되면 누가 앞서거나 뒤서는 일 없이 한날한시에 같이 죽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거 한 가지 딱 소원하고 싶습니다.” 소박하지만 인간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신의 왕 제우스에게는 아주 간단한 소원이기도 했다. 신들이 그 집을 나와 다시 길을 떠날 때, 필레몬과 바우키스는 그들을 배웅하고 나서 곧바로 서로에게 어깨를 기댄 채 동시에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해로동혈’이라는 환상에 대한 조롱이 있는 것은 아닐까. 본래 고대신화에 나오는 신화의 주인공들, 즉 신들은 극소수의 순정파, 순결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유분방한 사생활을 가졌는데, 신들의 왕 제우스가 대표적이다. 신들의 왕이면서도 부인 헤라에게 잡혀서 늘 눈치를 보며 살았던 이유가 바로 그 자유분방함 때문이었다. 그 덕에 헤라 여신은 본의 아니게 질투의 화신으로 살아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 긴(?) 결혼 생활에 대해 지루함을 토로하고 몇 년에 한번씩은 리셋(재출발)의 기회가 있어도 좋겠다고 농담을 한다. 인간이 신의 형상과 성정을 닮은 존재라면 그리 발칙한 발상만은 아닐 것도 같다. 해로의 꿈을 노래한 위나라 병사의 시를 되씹어 봐도 좀 미묘하다. 그도 고향에서 평화로운 해로를 누리고 있다면 그 언약에 대한 감정이 이렇듯 애틋했을까. 대화당한의원 원장 이은주